영천이씨중앙종회 소개
8파소개
생원공파(生員公派)
파조 이광언 李光彦, 1525 ~ 1608
조선중기의 인물.
본관은 영천(永川), 자는 언수(彦秀), 호는 서암(西巖), 아버지는 수고당 여해(汝諧)이며 어머니는 선산김씨(善山金氏)로 직장(直長) 형손(亨孫)의 딸임. 군위 양곡(良谷)이 고향. 명종(明宗) 때 생원시(生員試)에 급제, 수직(壽職)으로 동지중추부사를 지내심. 생원공파의 후손들은 광석산 자락인 군위군 소보면 봉황리(연곡마을)을 주 세거지로 하고 있으며 영천시 신월리에도 한 세거지를 형성하고 있다. 연곡마을에는 생원공파 파조이신 서암선조(西巖先祖)를 기리는 경암재(景巖齋)가 있으며 광석산 성지 내에 묘소가 자리하고 있다.
감사공파(監司公派)
파조 이광준 李光俊, 1531 ~ 1609
조선중기의 문신.
본관은 영천(永川). 자는 준수(俊秀), 호는 학동(鶴洞). 아버지는 수고당 여해(汝諧)이며 어머니는 선산김씨(善山金氏)로 직장(直長) 형손(亨孫)의 딸임. 의성(義城) 산운(山雲)이 집성촌, 1562년(명종17,임술)때 문과별시에 급제, 학유, 좌랑, 정랑, 박사, 교수, 전적, 판결사, 형조참의 등의 벼슬을 차례로 지냈으며 외직으로는 하동 창녕현감, 임천 예천군수, 청송 강릉 중화부사, 충주목사, 를 거쳐 강원도관찰사 겸 병마수군절도사순찰사에 이르다. 오양서원(梧陽書院)에 배향되었으며, 2006년 6월 복원된 빙계서원(氷溪書院)숭덕사(崇德祠)에 「모재(慕齋)·서애(西厓)·회재(晦齋)·학봉(鶴峯)·여헌(旅軒)」 등 5선생과 함께 사림(士林)의 공의(公議)로 배향되었음.
참의공파(參議公派)
파조 이광영 李光英, 1536 ~ 1607
조선 중기의 인물
본관은 영천(永川), 자는 영수(英秀) 호는 석암(石庵). 아버지는 수고당 여해(汝諧) 어머니는 선산김씨(善山金氏). 부인 황간견씨(黃澗堅氏)를 맞아 여섯 형제를 두었다. 양곡 본제(本第)에서 태어나 5형제가 같이 살다가 군위 소보 석정(일명 돌정자)으로 옮겨 살았다고 전해온다. 손자(孫子) 정설(廷卨) 귀(貴)히 되어 통정대부(通政大夫) 공조참의(工曹參議)로 증직(贈職)받았고, 산소는 소보면 황산(荒山) 양좌(良佐)에 모셔져 있다. 그 후손들은 소보면 석정, 의성 가음면 고바우, 칠곡 가산면 하판, 경산 남산면 평기, 군위 산성면 무암, 구미시 선산 등지에 터를 잡고 이어가고 있다.
통덕랑공파(通德郞公派)
파조 이광철 李光哲, 1538 ~ 1605
조선중기의 인물.
본관은 영천(永川). 자는 철수(哲秀), 호는 청제(淸齊). 아버지는 수고당 여해(汝諧)이며 어머니는 선산김씨(善山金氏)로 직장(直長) 형손(亨孫)의 딸임. 군위 백령(白嶺, 흰재가 고향, 군위읍 인근의 삽령, 하곡, 사직, 소보 대량 등에도 세거하고 있다. 천품이 총명하셨으며 음직으로 通德郞에 승계(陞階)하셨다.
찰방공파(察訪公派)
파조 이광량 李光良, 1541 ~ 1596
조선중기의 인물.
본관은 영천(永川). 자는 양수(良秀), 호는 돈와(遯窩). 아버지는 수고당 여해(汝諧)이며 어머니는 선산김씨(善山金氏)로 직장(直長) 형손(亨孫)의 딸임. 군위 돈점이 고향, 통훈대부 사근도 찰방(通訓大夫 沙斤道 察訪)을 지내심. 후손들은 군위 산성면 운산리 섶재 마을과 군위읍 내량, 외량, 소보면 달산동, 산동면 봉산 등에 흩어져 세거하고 있다.
통정공파(通政公派)
통정공파는 군위 백령, 상주 단동면 소리, 영일, 청송등지에서 삶을 영위 하고 있다.
훈도공파(訓導公派)
참봉공파(參奉公派)
파조는 휘 숭림으로 참봉(參奉)을 지내셨다. 14세 휘 무홍 선조님의 묘소는 성지인 광석산에 자리하고 있다. 후손들은 김천 지례 대항 쪽으로 옮겨 살았으나 군위 고향을 완전히 벗어나 살지는 않았다고 전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