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페이지 개설에 즈음한 서

인사말.jpg

인류사회는 혈연으로부터 출발하여 그 혈연을 중심으로 발전하여 왔다.


원시사회에서 출발하여 산업사회와 정보통신사회를 거쳐 4차 산업사회로 발전하여오는 바쁜 과정에서도 씨족(氏族)에 대한 관념(觀念)이 성씨(姓氏)의 형태로 남아 있음은 큰 다행이라 사료된다.

우리 영천이씨중앙종회(永川李氏中央宗會)는 고려 중엽 영동정(領同正)* 벼슬을 지내신 휘 박(磗) 할아버지를 시조공(始祖公)으로 모시어 근 천년의 씨족사(氏族史)를 이어온 긴 역사(歷史) 지닌 가문(家門)의 전국적(全國的)인 종회(宗會)이다.


오늘날에 와서 생각하여보니 선조님들께서 시대적으로 미루어 볼 때 그 열악한 환경속에서도 이렇게 찬란한 문화유산과 사회발전에 크나큰 업적을 남기심에 고개 숙여 깊은 경의(敬意)를 표하여 드리는 바이다.

12세(世) 휘(諱) 세헌(世憲) 선조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뿌리가 튼튼해야 지엽(枝葉)이 무성한 것이요, 근원(根源)이 깊어야 물이 길게(멀리) 흐를 수 있는 것이니 천지(天地)가 있는 뒤에 부부(夫婦)가 있고 부부(夫婦)가 있는 뒤에 부자(父子)가 있는 것이요, 부자(父子)가 서로 이어 이어서 백대(百代)에 끊임이 없는 것은 그 조상(祖上)의 깊고 두터운 덕(德)이 자손(子孫)들에게 미쳐서 영구(永久)히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이니 자손(子孫) 으로서 는 조상(祖上)을 받들고 일가를 소중히 여기는 것이 곧 그러한 까닭이니라.” 라고 임자년(壬子年, 서기 1552년) 6월에 간행하신 영천이씨(永川李氏) 세보(世譜)의 연파록서(年派錄序)에 기록하셨다. 이 말씀은 “조상의 깊고 두터운 덕(德)이 쌓이면 먼 훗날의 자손(子孫)들까지 큰 영향을 미침으로 그 가문이 끊임없이 번창(繁昌)해 갈 수 있다.”라는 뜻이다.
선조(先祖)님의 이 금언(金言)을 깊이 새겨 우리의 후손(後孫)들에게도 큰 음덕(蔭德)이 장구(長久)히 이어지도록 하여야 하겠다는 마음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된다.

너무 늦은 감이 있으나 남녀노소 종친들간의 유대(紐帶)를 더욱더 공고히 하기 위하여 실시간에 걸쳐 빠르고 새로운 정보를 상호 교환할 수 있는 장을 만들고자 이 홈페이지를 개설하게 됨을 큰 기쁨이라 아니할 수 없다.

본 홈페이지에 영천이씨 중앙종회의 개괄, 8파 상계도(上系圖), 군위군 소보면 봉황리(鳳凰里)에 소재한 성지(聖地) 광석산(廣石山) 자락(일원)에 있는 광석재(廣石齋), 영천이씨(永川李氏) 세장지(世葬地) 묘소 전경 (全景), 시조공 (始祖公) 설단(設檀), 종회 연혁, 유적과 유물, 역대 인물 등등을 수록하였으니 종친 여러분께서는 자주 들어오셔서 좋은 고견 (高見)을 주시어 상호(相互) 뜻 있는 정보 교환의 마당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아울러 홈페이지 개설(開設)에 노고(勞苦)를 많이 하신 개설위원 여러분께도 깊은 감사(感謝)의 마음을 전하여 드립니다.

홈페이지가 처음 개설된 작품임으로 이것저것 부족한 점은 점진적으로 보완(補完)하여 나갈 것임으로 많은 지적을 하여 주시면 더욱더 승화(昇華)된 작품으로 발전(發展)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끝으로 사랑하는 종친 여러분의 가정에 늘 행운(幸運)이 충만(充滿)하시고 더욱더 건강(健康)하시기를 기원(祈願)드립니다.
* 영천이씨의 첫 족보 임자보(1552)를 편찬한 우암(牛巖) 세헌(世憲)공은 성종조(1470 ~ 1494)에서 연산, 중종, 명종조(1546 ~ 1567)에 이르기 까지 네 왕조에 걸쳐 활동하셨다. 이 시대(1491년)에 영동정(領同正)이란 직함이 있었기 때문에 고려조의 영동정(令同正)을 領同正으로 기록한 것으로 사료됨.
2019년 11월 12일
영천이씨중앙종회 홈페이지 개설 위원회 위원장
제35대 중앙종회장 이광식(李廣植) 삼가 드립니다.